아침에 눈을 떴을 때, 지난 밤 술자리에서의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집에 언제 어떻게 돌아왔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까?
연말과 연초가 되면 각종의 송년회, 신년회 등 하루가 멀다 하고 술자리가 이어지게 되는데, 직장인들은 특히 필름이 끊기도록 마셔서 이튿날 동료들 얼굴보기 민망해지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당신의 잘못된 음주습관을 고쳐야 한다. 이른바 ‘블랙아웃’은 귀중한 생명을 단축할지도 모른다는 경고등이면서 뇌손상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겪을 수 있다는 위험신호이기 때문이다.
한림대의료원 한강성심병원 정신과 최인근 교수는 “누구나 한번쯤 할 수 있는 실수로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만 이것이 습관적으로 반복된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범죄를 저지르거나 큰 사고를 당할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도 뇌가 손상돼 기억력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 블랙아웃이란?
블랙아웃은 술 마신 후 ‘필름이 끊긴다’고 흔히 표현되는 단기기억상실을 가리키는 의학용어다. 의식이 없어지는 것과는 다르게 이 상태에서는 대개 의도적이고 자발적인, 그리고 비교적 어려운 행위들까지도 수행할 수 있지만, 단지 기억을 하지 못할 뿐이다.
이들은 음주 직전 습득한 정보나 그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장기기억에는 큰 문제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음주 중 입력된 내용들은 시간이 지난 후에 기억해내는 데 어려움을 보인다. 혈중 알코올 농도 0.15% 정도부터 기억력 장애가 나타난다.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이 정도는 소주 5∼6잔 가량을 마신 후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내용을 종종 기억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블랙아웃에는 음주 이후의 일정 기간을 전혀 기억 못하는 총괄적 블랙아웃과 부분적으로 기억을 하는 부분적 블랙아웃이 있고 후자가 훨씬 흔하다.
블랙아웃은 음주량과 관련이 있으나 특히 급격한 혈중 알코올 농도 상승에 영향이 있다. 갑작스러운 알코올 증가가 뇌로 하여금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아 발생하는 것이다. 또한 공복시의 음주도 혈중 알코올 농도를 급히 올려 영향을 준다. 대개의 블랙아웃은 음주 후 수 시간, 즉 혈중 알코올 농도가 올라가고 있는 시기에 발생한다.
■ 뇌에 저장되지 않고 사라지는 기억
알코올 의존으로 인한 기억 손상은 임상 양상이 대뇌의 해마 손상 환자들에서와 비슷하게 나타나므로 해마의 이상으로 추측되고 있다.
해마는 기억이 영구 기억으로 새겨지기 전에 임시로 머무는 임시 기억저장소다. 해마에 임시로 입력되어 있던 기억은 뇌세포들 사이의 전기신호를 타고 뇌 외피층인 신피질에 저장된다. 이때 알코올이나 아세트알데히드의 독소가 뇌세포를 직접 파괴하지는 않고, 세포와 세포 사이의 신호전달 메커니즘을 교란시켜 기억의 저장을 방해한다.
결국 데이터 입력은 시켰으나 저장하지 않고 컴퓨터를 끄는 것이나 마찬가지 상황인 것이다. 아예 뇌에 정보가 입력되지 않은 것이므로 능숙한 최면술사가 최면을 걸어도 당시 상황을 기억할 수 없다.
■ 장기간 반복될 경우 알코올성 치매로 발전 가능
2002년 미국 듀크 대학의 화이트(White) 교수가 772명의 대학생을 상대로 블랙아웃 상태에서 경험한 것들을 조사한 결과(중복체크 가능), 타인을 공격하는 경우가 33%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는 돈을 함부로 쓰거나(27.3%), 성적인 활동(24.8%), 다투거나 싸움(16.3%), 기물 파손(16.1%) 등 순이었다. 자칫 타인에게까지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음주운전도 2.5%에 달했다(J Am Coll Health 2002;51(3):117-119, 122-131). 이러한 위험한 행동들은 알코올이 뇌에 영향을 끼치면서 감정조절에도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는 게 최 교수의 해석.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블랙아웃이 해마의 신경세포 재생을 억제한다는 점이다. 블랙아웃 현상이 장기간에 걸쳐 반복될 경우 뇌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술을 마시면 알코올이 혈관을 타고 온몸에 퍼지는데 특히 뇌는 다른 장기들보다 피의 공급량이 많기 때문에 뇌세포가 손상을 입는다. 초기엔 뇌의 기능에만 문제가 생길 뿐 구조적 변화 없이 다시 원상회복이 되지만 필름 끊기는 일이 계속 반복되면 탄성을 잃은 스프링처럼 뇌에도 영구적인 손상이 와서 종래에는 알코올성 치매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알코올성 치매에 걸리면 뇌가 쪼그라들면서 가운데 텅 빈 공간인 뇌실이 넓어지게 된다.
3번 이상의 블랙아웃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경우 53∼58% 정도 유전적 경향이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Arch Gen Psychiatry 2004;61(3):257-263).
■ 예방 위해선 폭음하는 습관부터 고쳐야 한다
필름이 한번 끊기기 시작하면 그 다음엔 자동적으로 끊긴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과 다르다. 필름이 계속 끊기는 이유는 폭음하는 음주 행태가 고쳐지지 않고 계속되기 때문이다. 과거에 부분적인 블랙아웃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비교적 낮은 알코올 혈중 농도에서도 기억력에 장애를 보일 수는 있다.
블랙아웃은 술 마시는 양과 속도에 비례해 발생한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술 마시는 횟수와 양을 줄여야 한다. 알코올이 뇌에 영향을 미치기 전에 간에서 충분히 분해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마셔야 하는 것이다.
간에서 알코올을 분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시간당 7∼10g으로, 체중 60kg인 사람이 맥주 1병(500㎖, 4%)을 마시는 경우 대사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3시간 정도이며 소주 1병(360㎖, 25%)을 마신 경우 모두 산화되는 데 약 13시간이 소비된다.
때문에 술은 천천히 마시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한번 술을 마신 후 다음 술자리를 갖기까지 3∼4일 간격을 두는 것이 좋다. 알코올에 의해 융단폭격을 당한 간은 음주 후 72시간이 지나야 정상적으로 제기능을 회복한다. 아울러 채소, 과일류, 단백질이 풍부한 식품 등 적정한 안주와 함께 마시며 반드시 음주 전에 식사부터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최교수는 “블랙아웃을 예방하려면 독한 술을 되도록 냉수와 함께 희석해서 마시고, 다른 종류의 술끼리 섞어 마시지 말아야 한다”며 “극도로 불안할 때나 화를 풀기 위해서 술을 마시는 행위도 삼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술을 마실 때 담배를 피우는 행위도 금물. 지금은 각종 송년 모임으로 술자리가 많아지는 시기. 자신의 몸 상태에 맞게 음주의 빈도와 양을 조절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
■ 혈중 알콜농도
알콜양 X 술의 농도 X 0.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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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중 X 0.7(여자는 0.6)
--> 여기서 나온값에 10을 나누면 된다.
(술의 농도의 경우 소주 25도는 0.25로 계산)
-- 보통 음주후 30분후가 최고혈중농도를 유지하며 그이후 시간당 0.015씩 감소한다.
* 정상성인의 경우(체중 70 Kg 기준)
소주 한병의 경우 음주후 1시간내의 최고혈중 알콜농도는 0.13 이고 6시간후에 0.04
소주 반병의 경우 0.06 --> 1시간후 0.04
맥주 2캔(355ml X 2) 의 경우 0.05
생맥주 1000ml의 경우 0.07 --> 1시간후 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