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60대 가정주부 A씨는 눈이 붓고 코 안쪽(비강)에 불이 난 것처럼 후끈거리는 증상이 발생했다. 코를 누르면 덜 아팠지만 그다음에는 통증이 귀로 퍼졌다. A씨는 이비인후과를 찾아 진료를 받고 일주일치 일반 약을 처방받았다. 하루 동안 약을 먹어도 차도는 없고 통증이 계속되자 평소 의학 지식이 있었던 A씨는 '대상포진'을 의심하고 마취통증의학과를 찾은 뒤 곧바로 항바이러스제를 처방받아 일주일간 복용한 끝에 '끔찍한 통증'에서 벗어났다. A씨는 발진 없는 대상포진도 많아 눈의 경우 빨리 발견하지 못하고 방치하면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80대 할머니 B씨는 대상포진 생백신을 접종한 후 눈 부위의 이마 쪽에 엷은 발진이 생겨 대학병원에서 대상포진을 진단받고 항바이러스제를 처방받았지만, 2~3일만 복용하고 방치해 결국 한쪽 눈을 거의 실명했다.
B씨는 대학병원을 두세 군데 전전하며 이전 시력을 회복하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현재 형태만 보일 뿐 시력 기능을 상실했다. 국제학술지에 따르면 정확한 빈도는 아직 보고된 적 없지만 정상인 5명 중 1명은 일생에 한 번 대상포진에 걸리며 '무발진 대상포진(zoster sine herpete)' 발생 빈도도 상당히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문동언 문동언마취통증의학과의원 대표원장(가톨릭의대 마취통증의학과 명예교수)은 "대상포진이 체성신경이 아니라 내장신경이나 자율신경을 침범하면 피부에 발진이 나타나지 않아 진단이 어렵고 치료 시기를 놓치는 사례가 많다. 뇌척수액을 뽑아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하면 진단이 가능하지만 임상에서는 잘 시행되지 않는다"면서 "통증 부위에 발진이 없으므로 내부 장기의 병을 의심해 여러 진료과에서 검사만 하다가 바이러스 치료와 통증 치료 시기를 놓쳐 '대상포진 후 신경통'으로 발전하고 우울증과 불면증 등 정신질환까지 초래하며 수년~수십 년간 고통받는 일이 흔하다"고 설명했다.
스튜어트 레이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 교수는 한 논문에서 "발진을 보면 바로 대상포진임을 알 수 있지만, 발진이 나기 전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는 통증만으로 진단하기 어렵다"며 "특히 환부 피부에 세균성 감염병을 일으키거나 눈 주위에 나타나는 '안부 대상포진'은 눈이 손상되거나 시력에 영향을 주는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
대상포진(帶狀疱疹·Herpes Zoster)은 면역이 떨어진 추운 겨울에 많이 발생한다.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는 수두에 걸린 뒤에도 몸속에 머물다 몇 년간, 때로는 수십 년 동안 특정 신경에서 잠을 잔다. 이것이 다시 활동을 시작하면 대상포진이 된다. 수두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어느 나이에든 발병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대상포진은 얼굴, 몸통, 팔다리 등 신체의 어느 한쪽 신경을 따라 띠 모양으로 통증과 발진이 나타나므로 쉽게 진단이 가능하지만, 무발진 대상포진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일반 의사도 잘못 진단을 내리는 일이 많다.
문 원장은 "최근 극도로 피곤하거나 과도한 업무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사람이 신체의 어느 한쪽으로만 띠 모양으로 쑤시는 통증이 있으면 발진이 없더라도 대상포진 가능성을 의심해 하루라도 빨리 전문의를 찾아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면서 "아프기 수일에서 일주일 전부터 감기는 아닌데 목이 따끔거리고 미열이 나기도 하고 코가 막히는 등 감기 증상이 있으며, 가슴이나 얼굴 등 신체 한쪽 부위에만 감각이 예민해져 살짝 스쳐도 불쾌하거나 아픈 것이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큰 수술을 받았거나 당뇨나 암환자, 코로나19에 걸린 후 면역이 떨어졌을 것으로 예상되는 어르신은 발진이 보이지 않더라도 정확한 진단을 받아 치료 시기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상포진 통증은 대부분 발진이 없어지면 감소하지만 조기에 치료되지 않은 때에는 피부 발진이 사라져도 10명 중 1~2명꼴로 통증이 남아 있는 '대상포진 후 신경통'으로 악화돼 고통을 겪을 수 있다. 따라서 무발진 대상포진은 진단이 늦기 때문에 대상포진 후 신경통으로 이행될 확률이 아직 보고된 바 없지만 매우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상포진이 거의 확실하다면 발진이 보이지 않더라도 항바이러스제를 먼저 투여해야 효과적이다. 그렇지 못한 경우라도 발진이 생긴 후 72시간 내에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해야 신경 손상을 줄일 수 있다. 통증 자체도 이차적으로 신경 손상을 일으킬 수 있어 적극적인 통증 치료 또한 매우 중요하다. 통증이 심하면 진통제 외에 항경련제와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하고 초음파를 보면서 신경주사 치료를 병행해 신경 손상을 막아야 한다. 즉 바이러스 치료와 통증 치료를 동시에 가능한 한 빨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상포진에 걸리지 않으려면 면역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고 개인 위생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무엇보다 대상포진 백신을 맞는 게 좋다. 대상포진 예방접종은 1회 접종하는 생백신과 2개월 간격으로 총 2회 접종하는 사백신(유전자 재조합) 등 두 종류가 있다. 그러나 생백신은 면역력이 결핍된 환자나 고령이라면 오히려 대상포진에 걸릴 위험이 있다.
박정하 경희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생백신은 말 그대로 살아 있는 바이러스를 이용하기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예방접종을 하면 오히려 대상포진이 발생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매경헬스 기사 참조> 이병문 의료전문기자. (2024.1.24.)